[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2016.12

내가 들고 있는 촛불, 그리고 연대



양민재 회원, 내과 전문의



저는 대학병원 소화기내과에서 진료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의 전공은 담도 결석, 췌장염, 담도/췌장암이고 이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췌담도 내시경을 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입니다. 저는 환자를 책임지는 주치의임과 동시에 은퇴를 앞두신 스승님께 아직 시술 노하우를 더 배워야 하는 미생의 신분이고 전임 교수가 되기 위해 학문적 업적도 내야하고 재계약을 위해 진료 실적도 쌓아야 하는 자기 만족도가 높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 전공인 췌담도 치료 내시경은 시술의 난이도가 높고 시술 관련된 합병증이 많아서 항상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처한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좋은 가장은 못되고, 연구소에서는 불러도 대답 없는 불량 회원인지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시술을 통해 생과 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구할 수 있다는 보람과, 제게 어려운 일이 생길까 봐 제가 시술하고 있을 때는 밤에도 집에 못 가셨던 환갑이 넘으신 스승님에 대한 의리와, 이미 이 일을 해 온 시간들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신을 더 믿을 수 있게 되고, 만나는 환자들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려서부터 배우고 외쳐왔던 이상적 가치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치의로 입원 환자를 받은 2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환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0대 후반 환자였고 10년 전 딸이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면서 함께 들어온 조선족 여성이었습니다. 오산에 살면서 주로 식당 보조를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수개월전부터 허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파스를 붙이며 통증을 참고 지내다, 눈이 노래지고 소변이 짙어지는 황달 증상이 동반하면서 저희 병원에 내원하였습니다. 영상 검사 상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이 진단되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암으로 막힌 담도에 철망을 삽입하여 황달을 해결하고자 췌담도 내시경을 시행하였는데, 제 시술 구력이 부족하여 한 시간 동안 시술을 성공하지 못했고 스승님의 도움을 얻어서 어렵게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환자는 시술 이후 황달과 통증이 호전되면서 저를 은인으로 생각하며 의지하셨고, 이후 종양 내과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저를 만나러 오실 때면 항상 곱게 화장을 하시고 음료수 박스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는 심한 구토와 탈수 증상으로 응급실을 내원하였고 CT상 췌장암의 크기가 증가하면서 십이지장을 침범하여 십이지장이 막힌 소견을 보였습니다. 십이지장을 뚫기 위한 철망을 추가로 삽입하여 식사를 할 수 있게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시술은 스승님을 보조해서는 많이 시행했지만 제가 시술자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황이었고, 제 스승님은 해외 학회를 가신 상황이었습니다. 저를 너무나 믿고 있는 환자에게 닥친 위기의 상황에서 도저히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었고 저를 믿으시라고 당부를 하고 시술을 들어갔습니다. 교회는 안 다니지만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시술을 시작하였고, 스승님과 함께했던 시술들을 기억하면서 한 시간 동안 종양과 싸운 끝에 운이 좋게도 십이지장을 뚫고 철망을 삽입하여 환자의 증상을 호전 시킬 수 있었습니다.


환자는 이후에 담도 철망이 막히고, 십이지장 철망이 다시 막혀서, 재 시술을 한 차례씩 더 하였고 이후로는 체력이 좋지 않아 항암치료는 할 수 없었지만 잘 기능하는 담도 철망과 십이지장 철망의 역할로 돌아가실 때까지 굶지 않고 영양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내실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저에게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대학병원 입장에서 급성기 치료가 끝나고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은 근처 호스피스 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부족한 저를 만나 위기의 상황들을 겪어 왔던 환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렇게 저를 좋아하신 분이었는데 저를 보아도 말조차 잘 못하는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차마 전원을 하지 못했고 사유서를 몇 차례 쓰면서 한 달을 지낸 후, 환자를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환자를 처음 만난 지 15개월만이었습니다.


환자와 함께한 세월 동안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를 참 많이 느꼈고, 부담스럽지만 극복하는 방법도 배웠으며 정서적인 공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는 37세이고 현장, 운동, 변혁, 투쟁, 연대라는 말들을 처음 들은 지 17년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매우 광범위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고 일정 부분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 단어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개개인이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아직 미완의 과제이지만, 저는 제가 살아가는 이 공간이 죽음과 고통이 일상인 치열한 현장이라고 생각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술자로서 연구자로서 주치의로서 부단한 저의 노력이 세상을 향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자들과 가족들의 삶을 공감하고 굳건히 지켜주는 것이 훌륭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항상 한노보연 회원, 후원회원, 일터 독자 여러분들의 삶이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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